난 스페인 하면 조지오웰의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 ‘피카소’,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 이 그려진다. 특히 스페인에서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 ‘바르셀로나’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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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당이 집권하고 1936년 스페인에서도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대가 내란을 일으키자 반동에 맞서 전투를 벌인 군인은 해방된 노동자들이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역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고 토지와 공장은 개인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주인이 되고, 농노들은 자유로워지고 모두가 평등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해방된 스페인 사람들은 파시즘의 반동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반동에 맞선 전쟁은 반파시스트 전쟁이 아니라 혁명전쟁이었다. 지금 그곳에서 그때의 뜨거웠던 ‘카탈로니아 찬가’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당시를 바르셀로나를 상상해본다.

스페인에 태어난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피카소는 스탈린을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이 스탈린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되면서 프랑스 공산당에서 제명되기 전까지는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다. 당시 유럽의 공산당은 소련 스탈린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피카소는 미술 활동을 통해 사회 문제를 알리려 했고 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을 고발한 ‘게르니카’, 한국 전쟁 중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 ‘노근리 학살’을 고발하는 작품 ‘한국의 학살’ 등이 있다. 피카소는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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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광객을 바르셀로나를 찾는 데는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들, 그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우디 건축은 설득력 강한 표현주의적 건축이며, 초현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도 어울린다.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스페인 특유의 양식이기도 하고, 지방색을 강하게 드러내 민족주의 건축으로도 이야기된다.

1883년 착공, 135년째 공사 중인 미완의 대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기괴한 외관에 기하학적 내부 보며 감탄사를 자아낸다. 파사드(앞면) 3개 중 ‘영광’을 제외 ‘탄생’, ‘수난’은 완성되었고, 열두 제자와 4 복음서, 예수 상징하는 첨탑도 들어서 있다. “가우디 사망 200년 맞는 2026년 완공 목표”라고 한다.

예기치 못한 전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가우디는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모든 것은 그래 왔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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